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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 디자인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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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 디자인 01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ㅡ인생의 맨 끝에 청춘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
나는 해보지 않았던 생각이다.
ㅡ그러면 어떻게 될까?
ㅡ지금의 우리 얼굴이 노인의 얼굴이겠지.
그의 늙은 얼굴도 나의 늙은 얼굴도 상상이 되질 않았다.
ㅡ누군가 약속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의미 없는 일은 없다고 말이야. 믿을 만한 약속된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쫓기고 고독하고 불안하고 이렇게 두려움 속에서 보내고 나면 다른 것들이 온다고 말이야. 이러느니 차라리 인생의 끝에 청춘이 시작된다면 꿈에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한 대의 버스도 보이지 않는 버스정류장 앞을 지났다.
ㅡ그렇지 않아?
그가 나에게 부질없는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ㅡ가장 젊은 얼굴로 죽음을 맞이하고 가장 늙은 얼굴로 지금 이 시간을 보내게 될 텐데, 그건 괜찮아?
그가 문 닫힌 주얼리 상점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보이지 않지만 아마도 그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ㅡ그 생각은 못 해봤어.
나도 인생의 끝에 청춘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못 해봤다. 나는 그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아닌 말을 중얼거렸다.
ㅡ다들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궁금해.

 

 

ㅡ인생의 맨 끝에 청춘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
나는 해보지 않았던 생각이다.
ㅡ그러면 어떻게 될까?
ㅡ지금의 우리 얼굴이 노인의 얼굴이겠지.
그의 늙은 얼굴도 나의 늙은 얼굴도 상상이 되질 않았다.
ㅡ누군가 약속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의미 없는 일은 없다고 말이야. 믿을 만한 약속된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쫓기고 고독하고 불안하고 이렇게 두려움 속에서 보내고 나면 다른 것들이 온다고 말이야. 이러느니 차라리 인생의 끝에 청춘이 시작된다면 꿈에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한 대의 버스도 보이지 않는 버스정류장 앞을 지났다.
ㅡ그렇지 않아?
그가 나에게 부질없는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ㅡ가장 젊은 얼굴로 죽음을 맞이하고 가장 늙은 얼굴로 지금 이 시간을 보내게 될 텐데, 그건 괜찮아?
그가 문 닫힌 주얼리 상점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보이지 않지만 아마도 그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ㅡ그 생각은 못 해봤어.
나도 인생의 끝에 청춘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못 해봤다. 나는 그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아닌 말을 중얼거렸다.
ㅡ다들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궁금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귀엽잖아

귀엽잖아
펄(Perle), 체리만쥬

 

"…… 나는 끝나가는 것들의 마지막에 서 있고."
연유 모를 첫머리였다.
"그대는 다가오는 것들의 선봉장이지."
그러나 진은 그 말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는 이쪽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불에 덴 사람처럼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상대는 더 이상 아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무엇 하나 숨길 것 없는 이처럼, 떳떳하고 당당하게 앞을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다. 그런 생각마저 일 때 즈음, 상대의 입술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손잡고 있는 거야."

 

 

"…… 나는 끝나가는 것들의 마지막에 서 있고."
연유 모를 첫머리였다.
"그대는 다가오는 것들의 선봉장이지."
그러나 진은 그 말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는 이쪽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불에 덴 사람처럼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상대는 더 이상 아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무엇 하나 숨길 것 없는 이처럼, 떳떳하고 당당하게 앞을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다. 그런 생각마저 일 때 즈음, 상대의 입술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손잡고 있는 거야."

 

펄(Perle), 체리만쥬
<비행운> 너의 여름은 어떠니, 김애란

 

선배를 만난 건 신입생 환영회 때였다. 그때 나는 너무 많은 사람, 몹시 나쁜 공기, 엄청 많은 상품들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물론 교정의 초목과 잘 식은 봄밤 공기는 가슴을 떨리게 하기 충분했다. 지금도 나는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라는 식물의 방어 물질에 사랑의 묘약이 섞여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학기의 그 많은 청춘이 그렇게 동시에 상기된 채 해롱댈 수는 없는 일이다. 번식기의 젊음이 내뿜는 에너지는 은근하며 서툴렀고 노골적인 동시에 싱싱했다. 나는 스무 살을 새로운 도시에서 맞는 게 좋았다. 철학과 사람들의 눈빛과 말투, 안색에도 호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나이엔 의당 그래야 하는 듯 알 수 없는 우울에 싸여 있었고, 내 우울이 마음에 들었으며, 심지어는 누군가 그걸 알아차려주길 바랐다. 환영식 날, 잔디밭에 모인 무리에서 슬쩍 빠져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내가 거기 없다는 걸 통해, 내가 거기 있단 사실을 알리고 싶은 마음. 나는 모임에서 이탈한 주제에 집에도 기어들어 가지 않고 인문대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스스로 응석을 부리며 뭔가 흉내 내는 기분이 못마땅했지만. 숨은 그림 찾아내듯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내 이마에 크고 시원한 동그라미를 그려주길 바랐다. 그런데 거기, 어두운 인문학관 통로에 선배가 있었다. 복도 끝 굽이진 곳에 길고 흐린 실루엣으로. 화장실에 들른 건지, 사물함을 확인하러 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건 선배가 나를 알아봤다는 거다.
"너, 미영이지? 서미영."
"예? 예."
나는 선배가 내 이름을 안다는 사실에 놀랐다. 동시에 슬며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뚱뚱해서 눈에 띄었나 싶고, 조금 전 진실게임에서 아주 지저분한 농담 하나를 실패하고 온 참이어서 그랬다.
"운산에서 왔다며. 우리 아버지 고향이랑 같아서 기억했어."
"아, 네."
"왜 혼자 있니?"
"아, 저, 그냥, 뭣 좀 생각하느라고요."
형편없는 핑계 때문인지, 내가 눈을 심하게 깜빡여서 그랬는지 선배가 조그맣게 웃었다.
"없어서 찾았어. 이따 보자."
나는 엉거주춤 목례한 뒤 그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딱히 목적지는 없었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는 잔디밭으로 향하다 몇 발짝 안 가, 돌아서며 한마디 했다.
"고개 좀 들고 다녀라, 이 녀석아."
아마, 그래서였을 거다. 훗날 누군가 내게 사랑이 무어냐고 물어왔을 때, '나의 부재를 알아주는 사람'이라 답한 것은.

 

 

선배를 만난 건 신입생 환영회 때였다. 그때 나는 너무 많은 사람, 몹시 나쁜 공기, 엄청 많은 상품들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물론 교정의 초목과 잘 식은 봄밤 공기는 가슴을 떨리게 하기 충분했다. 지금도 나는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라는 식물의 방어 물질에 사랑의 묘약이 섞여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학기의 그 많은 청춘이 그렇게 동시에 상기된 채 해롱댈 수는 없는 일이다. 번식기의 젊음이 내뿜는 에너지는 은근하며 서툴렀고 노골적인 동시에 싱싱했다. 나는 스무 살을 새로운 도시에서 맞는 게 좋았다. 철학과 사람들의 눈빛과 말투, 안색에도 호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나이엔 의당 그래야 하는 듯 알 수 없는 우울에 싸여 있었고, 내 우울이 마음에 들었으며, 심지어는 누군가 그걸 알아차려주길 바랐다. 환영식 날, 잔디밭에 모인 무리에서 슬쩍 빠져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내가 거기 없다는 걸 통해, 내가 거기 있단 사실을 알리고 싶은 마음. 나는 모임에서 이탈한 주제에 집에도 기어들어 가지 않고 인문대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스스로 응석을 부리며 뭔가 흉내 내는 기분이 못마땅했지만. 숨은 그림 찾아내듯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내 이마에 크고 시원한 동그라미를 그려주길 바랐다. 그런데 거기, 어두운 인문학관 통로에 선배가 있었다. 복도 끝 굽이진 곳에 길고 흐린 실루엣으로. 화장실에 들른 건지, 사물함을 확인하러 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건 선배가 나를 알아봤다는 거다.
"너, 미영이지? 서미영."
"예? 예."
나는 선배가 내 이름을 안다는 사실에 놀랐다. 동시에 슬며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뚱뚱해서 눈에 띄었나 싶고, 조금 전 진실게임에서 아주 지저분한 농담 하나를 실패하고 온 참이어서 그랬다.
"운산에서 왔다며. 우리 아버지 고향이랑 같아서 기억했어."
"아, 네."
"왜 혼자 있니?"
"아, 저, 그냥, 뭣 좀 생각하느라고요."
형편없는 핑계 때문인지, 내가 눈을 심하게 깜빡여서 그랬는지 선배가 조그맣게 웃었다.
"없어서 찾았어. 이따 보자."
나는 엉거주춤 목례한 뒤 그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딱히 목적지는 없었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는 잔디밭으로 향하다 몇 발짝 안 가, 돌아서며 한마디 했다.
"고개 좀 들고 다녀라, 이 녀석아."
아마, 그래서였을 거다. 훗날 누군가 내게 사랑이 무어냐고 물어왔을 때, '나의 부재를 알아주는 사람'이라 답한 것은.

 

<비행운> 너의 여름은 어떠니,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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